
언제부터 일까 생각해보면 그때였던 것 같다.
내가 일본에 대해 궁금해 하고 더 알고 싶어했던 이유.
집에 컴퓨터가 없었는데 사촌오빠가 집에와서 컴퓨터를 설치해줬다.
컴퓨터가 집에 생겼을때 그 기쁨은 희미하지만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컴퓨터는 부모님방에 설치가 되어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할때는 부모님이 주무시지 않을때 해야했고
인터넷이 되기 시작하면서
어느순간 그 컴퓨터는 우리방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 뒤로 컴퓨터를 자유롭게 하는데
그때 처음 일본 연예인을 접하게 되었다.
일본어도 물론 그때 처음 듣게 되었다.
그 시기가 보아가 일본에서 활동할때쯤...?
보아를 좋아했기때문에 일본어 버전 노래들도 듣고
따라부르던 시기였다.
보아 자료들 찾아보기 시작했다.
보아가 날 일본과 연결시킨 시작점이였다.
당시 난 아이돌을 몹시 좋아하는
그냥 평범한 그런 한국여학생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 많은 아이들처럼 오빠!!!를 외치며 아이돌그룹들을 좋아했다.
그런데 보아의 일본활동들을 찾다가 접하게 된 일본 아이돌이라는 문화에 충격을 받고 빠져들기 시작했다.
난 몇년동안 한국 아이돌에 관심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시기가 일본아이돌 붐이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하다.
내가 당시 처음 접했던건
마츠우라아야(松浦亜弥)였다.
처음에 그 사람이 마츠우라아야인지도 몰랐다.
그 시기쯤 움짤 gif 이미지들을 보고 신기해 하면서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던 시기였다.
내가 봤던 움짤은 핑크색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있었던 마츠우라아야였는데
♡ 桃色片想い ♡ 무대 혹은 뮤직비디오에서의 gif였던 것 같다.
진.....짜 예뻤다.
보자마자 푹 빠지고 말았다.
그녀는 천상 아이돌이였다.
솔로였는데 천연아이돌 그 자체였다.
외모, 노래, 끼 전부 충분했다.
완벽 그 자체.
마츠우라아야는 하로프로젝트 소속이였다.
마츠우라아야를 파게 되면서 모닝구무스메를 알게 되었고
응??이게 뭐지? 하고 하나씩 찾아봤는데
그게 개미지옥인지 모르고 발을 들이고 말았으니...
그렇게 찾아보다가 또 내 눈에 들어온 다른 사람이 있었으니
카고아이(加護亜依)였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너무 귀엽다 생각했는데
목소리 듣고 바로 뿅갔다
어찌나 목소리가 예쁘던지ㅠㅠㅠㅠ
목소리 뿐만 아니라 당시 나이가 초등학생이였던 것 같은데
라이브도 곧잘해서 신기했다.
그때 우리나라는 립싱크를 주로 하던 시기여서
이런 모습이 나에게 더 매력적이였는지도 모른다.
난 라이브덕후라고나 할까..?ㅋㅋㅋ
일반 음원듣는 것 보다 무대를 보는걸 좋아하는 타입이고
그때도 그랬던 것 같다.
목소리도 일본아이돌은 얇고 가는 목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었고
당시 내가 그런 목소리를 선호했을지도 모른다.
모든게 잘 맞아 떨어져서
난 그렇게 한국음악은 점점 듣지 않고
온통 일본음악만 듣기 시작했다.
모닝구무스메의 노래와 마츠우라아야의 노래 ㅋㅋㅋ
내 음악 리스트엔 온통 그녀들의 노래들뿐이였다.
그렇게 몇년을 그녀들을 덕질하며 지내고,
고등학교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
그 친구는 쟈니스팬이였다 ㅋㅋㅋㅋㅋㅋ
나는 하로프로젝트팬이였고
둘이서 공통적으로 일본아이돌을 좋아하는 상태여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렇게 그 친구와도 본의아니게 친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알아주고
같이 호응해줄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좋은건지 모른다.
이때까지만해도 일본어 공부를 하는 친구를 보면서
나도 공부를 해야하는데...라고 생각만하고 실천을 못하고 있을때였다.
물론 그 후로도 난 실천을 계획만하고 실행에 옮긴적이 없었다.
난 그저 음악만 들었을뿐........
그러다 일본영상들을 여느때와 같이 보고있는데
자막이 늦게 나와서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막 나올때까지 마냥 기다리는게 너무 속상했다.
그냥 보면서 바로 이해하고 싶다.
무슨 말을 하는지 분위기라도 알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했던 행동들은 일본어를 습득하는데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
이건 모두 덕후력에서 비롯된 학습이였던 것 같다.
덕후가 언어공부 하는 방법
첫번째.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라디오 방송 음원과 대본을 구했다.
그리고 대본을 출력하고 음원을 들으면서
무슨이야기를 하는지를 대본을 통해서 한번 인지를 하고
그 뒤로 음원을 계속 들었다.
들으면서 모르면 모르는데로 알면 아는데로 ㅎㅎ
무슨소리인지 모르겠다 싶으면 또 다시 대본을 보고 그냥 반복했다.
두번째. 좋아하는 영화를 한편 고른다.
일단 최대한 사투리, 학생언어(유행어) 사용하지 않고 말투가 예쁜 영화를 선택했다.
서정적인 일상영화가 좋은 것 같다.
아무래도 학생물의 영화나 드라마는 애들 말투가 거칠어서 좋지않은 언어습관을 습득할수가 있으니 주의해야한다.
애니매이션으로 일본어 공부한 분들의 말투(단어)를 들어보면 왜 그래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가끔 그들도 본인들의 말투에 놀랠 것이다.
그때 내가 선택했던 영화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Heavenly Forest, 2006)
이 영화는 아직도 내용이 전체적으로 내 머리속에 저장되어있다.
영화가 시각적인면에서도 예뻤다.
주인공 남여 둘다 말투가 빠르지 않았고, 따라하기도 좋았다.
영화를 통채로 자막없이 암기하겠단 목적으로 본 영화는 이 영화뿐이였다.
영화를 처음 볼땐 그냥 일반 영화 보는 것 처럼 자막위주로 영화를 보고
두번째 볼때는 자막을 빼고 전반적인 영화 흐름을 봤다.
세번째는 다시 자막을 넣고 자막위주보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봤다.
그 다음부턴 자막을 빼고 쭉 보다가 모르겠다 싶은 부분만 자막을 켜서 확인했다.
그렇게 이 영화를 최소 8-10번정도는 본 것 같다.
그만큼 봐도봐도 질리지 않을 좋아하는 영화를 선택하는게 좋다.
신기한게 영화를 이런식으로 보고 난뒤부터였다.
자막이 없는데 조금씩 단어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들릴때 그 기쁨은 잊을 수 없다.
내가 무슨뜻인지 알다니!!!!!!!
세번째. 사실 이 방법을 제일 처음 쭉 실행하고 있었다.
일본음악을 듣고 외운다. 이건 가장 쉬운 방법이다.
뜻은 몰라도 흥얼거리고 있으니까 ㅋㅋㅋ
그리고 뜻을 찾아 무슨 뜻인지 한번 읽어본다.
그럼 어느정도 가사를 암기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단어가 이런 말이겠구나~
하고 추측이 가능한 시기다.
일본어는 한국어와 같은 문법이라 문법 생각하지 않고
거의 같은 순서로 생각하고 뜻을 생각하면 되었기 때문에 더 편했다.
노래도 일상언어를 가사로 하기 때문에 반복되는 단어를 나도 모르게 습득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자면 제일 많이 등장했던 단어
와따시, 코이 와 같은 단어였다.
내가 제일 먼저 암기한 한자이기도 하다.
私(watashi) , 恋(koi)
나 , 사랑
아마 내 기억속에 처음 듣고 알았던 일본어다.
그 뒤로 모르는 단어들은 찾아보기도 하고 궁금한 것은
쟈니스팬인 친구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 친구는 고등학생때 일본어1급시험을 치고 합격했었기 때문에
나같은 쩌리가 물어보면 다 척척 답해주더라 ㅋㅋㅋㅋ
나의 공부는 딱 여기까지 였다.
그 뒤로 문법공부 하겠다고 책은 샀는데
책을 펴서 공부하는 일은 몇번 있지도 않았고
공부를 한다고 펴서 열심히 단어를 암기해도
머리속에 스쳐지나가고 남지가 않더라.
난 내가 직접 경험한 것만 머리 속에 남았다.
그 외의 학습은 남지가 않는다.
길면 2일정도 기억 되는 것 같다.
똥멍청이 머리.
당시 보아가 일본에서 활동을 왕성하게 할 시기였고
보아의 일본어버전 음악들을 많이 들었다.
모닝구무스메, 마츠우라아야, 보아 이 셋의 노래를 주구장창 들었다.
이렇게 일본음악에 푹 빠져서 살다보니
점점 아는 일본어 단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마 3-4년 정도 이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일본어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학습되어 있었다.
이런 학습법의 단점을 이제 설명하겠다.
오직 듣기만된다.
말하기와 쓰기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읽기도.....
그나마 읽기는 일본음악을 들으면서 가사를 뽑을때
일본어,발음,한국어뜻 이렇게 들어가게 출력을 해서 봤었기 때문에
눈으로 한자를 조금 익히긴 했다.
하지만 말하기와 쓰기는 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난 또 고민이 시작되었다.
일본어로 말하고싶다.
너무너무 간절히 말하고 싶다.
왜 일본어를 들을줄은 아는데 말을 못하는걸까?
답답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이때쯤이였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다.
해외여행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알바를 해야하는데 구하기 어려워서
서울의 사촌언니집에 갔다.
언니집에서 생활하면서 인도레스토랑에서 알바를 몇개월간 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모아둔 돈으로 첫 여권을 만들고 첫 해외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모든걸 스스로 준비했다.
여행사를 통해서 가는 여행이 아닌 혼자서 가는 자유여행을 택했다.
당시 일본에 관심이 많아서 연락을 하던 일본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내가 도쿄에 여행간다고 하니 본인집에서 머물면서 지내라고 했다.
당시 내가 거의 7일?10일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친구도 대학생이라 방학기간이기도 했고 같이 놀자고 해서 그 친구집으로 갔다.
사실 외국인인데 혹시 모르니까 그 친구가 안나타나면 숙소를 바로 구하자는 계획을 세우고 갔다.
이때는 로밍같은거ㅋㅋ안됨. 유심같은것도 없을시기였다.
아이폰이 나온지 얼마안되었을때였다 ㅋㅋㅋ
여행가서 아이폰을 보고 신기해하면서 불편해서 어떻게사용해 라고 했을때니까 ㅋㅋ
그 친구덕분에 일본에 좋은 이미지를 남겼다.
그 친구는 한국어를 무지 잘하던 친구라서 일본어는 한마디도 할 필요가 없었다.
친구가 가이드식으로 다 데려다줬었고
내가 어디 가자고 하면 다 데려다줬었다.
친구도 같이 관광한셈ㅋㅋㅋ
난 여행이긴 하지만 그냥 일본의 일상을 느끼고 싶었던게 강했는데
그 친구 집에서 머물면서 그런걸 많이 경험했다.
그 일본여행을 통해서 난 일본에 대한 동경이 더 커졌다.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더 하게되었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할때쯤
해외로 취업을 연계하는 프로그램이 대학에 있었다.
난 바로 지원을 했고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
학교에서 비행기금액도 지원해줬다.
물론 후불로 ㅋㅋ생활비조금과 함께 지원받았다.
나중에 신청하면 돈을 줬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지금 뒤돌아보면 이 프로그램은 거지같은 프로그램이다.
학교에서 연계해서 현지에서 직접 면접보고 취업하는 방식은
젊은 청년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학생들을
저렴한 금액으로 마구 부려먹겠다는 속셈이다.
당시 주겠다고 제시한 월금 금액도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금액이다.
난 취업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본다면 다른 방법도 많고
내가 준비를 좀더 했다면 더 좋은 방법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엔 잘 모르니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시스템을 믿고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불행중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이 생활은 오래하지 못했다.
다만 워킹비자를 발급받아서 간거였는데
그 비자를 얼마 쓰지도 않고 귀국을 해버렸다.
그 비자 아직도 아까워!!!!!!!!!!!!!
그리고 한국에 다시 취업을 했다.
하루하루 생활을 하는데 우울해져갔다.
내가 왜 한국에서 이러고 있는건가....
일본에 처음 갔을때 내가 정했던 목표를 왜 이루지도 못하고 여기 있는건가.
이런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일본에 갔을때 정했던 목표는
" 일본어 기본대화 의사소통이 가능한 만큼은 습득하자 "
이거 하나였다. 그래서 터무니없는 월급에도 돈모은단 생각보단
언어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있으려고 했던건데
자의에 의한게 아니라 환경적인 문제로 귀국해서 너무 속상했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쯤
일본에서 일할때 같이 일했던 직원분과 연락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 본인이 지금 다니는 회사에 한번 면접을 봐보는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얼떨떨했지만 제안을 받아들이고
별 면접도 없이 비자를 발급받고 일본에 가서 일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본에 2년정도 생활을 하게되었다.
처음 3개월간은 아는사람도 없고, 회사집 회사집
집에오면 TV만봤다.
TV를 봐도 자막은 없고 ㅋㅋ사람들이 웃고있으면 대충 웃기다는건 알겠는데
왜 웃는지 웃음포인트를 잘 알지 못해 답답했었다.
계속 티비를 보다보니 어느순간 이해를 하고 있더라 ㅋㅋㅋ
마트에 가서 무언가 살때도 모르는 단어들은
스마트폰으로 이용해서 번역기 돌려서 찾아보고
여러번 보다보니 그 단어는 학습이 되어서 인식이 되더라.
예를 들자면
모야시(もやし) 를 마트에가서 자주봤다.
자주 구입해서 요리에 사용하기도 했고 ㅎㅎ
처음엔 모양을 보고 숙주겠다 생각은 하고
그 단어를 모야시라고 하는구나 라고 인식을 시켰다.
그리고 계속 숙주를 볼때마다 모야시란 글자가 보이니
모야시하면 바로 숙주가 생각난다 ㅎㅎ
이게 반복되다보면 숙주라는 한국말보다는
모야시라는 단어와 숙주그림이 머리에 인식이 되어서
가끔 모야시 그거 있잖아!! 모야시!!! 라고 외치고 있다.
한국말이 생각 안나서......
언어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시점이 어느순간 나에게 찾아오더라.
이 시기가 3개월쯤 되었던 것 같다.
일본엔 여러가지 모임들도 많다.
그래서 그 모임들도 찾아서 가보려고 해봤다.
그 중에 몇몇 곳도 참여해본 적도 있었다.
가서 말안하고 초반에 인사정도만 하면 일본인인줄 알더라.
이야기를 좀더 길게 하다보면 뭔가 말투가 이상해서
내가 외국인인걸 알더라.
억양이 달라서 다른 지방에서 왔나?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
내가 단어를 몰라서 이해를 못하고 응? 하는 경우가 많았다 ㅋㅋ
하지만 대충 듣기는 말하는 것보다 잘되었기 때문에
말을 이해하고 기본적인 의사표현정도 하니까
일본어 잘한다고 언제왔냐고 학생이냐고 묻고,
취업해서 온지 얼마 안되었다고하면
다들 대단하다. 일본어 잘한다. 이런 반복적인 이야기들을 하곤 했다.
일본어가 사실 한국인에게는 쉬운편인데
일본사람들은 일본어를 조금만 할줄 알면 대단하다고 늘 말한다.
이렇게 모임도 다니고 일본인 친구도 조금씩 만들다보니
일본어를 전보다 확실히 잘 말하게 되었다.
이해하는 부분도 더 많아지기 시작했으니 내 목표는 어느정도 이뤘다.
하지만 회사에서 전화업무를 지시했는데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싫었다.
업무용말투 같은걸 알지 못하니까...
존칭어. 격어를 몰랐다.
내가 공부를 정식으로 한게 아니고 체험으로 겪은거라
틀릴까봐 걱정되고 잘 못알아 들을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래도 사람 없으면 받아야 하니까
덜덜 떨면서 몇 번 받았다.
어짜피 하는말을 거의 비슷했고
내 대답은
"잠시만기다려주세요. "
"전화바꿔드리겠습니다."
혹은
"지금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누구시라고 전해드릴까요?"
정도였다.
행여 어디라고 말을 하거나 메모를 요구했는데
남길말을 내가 못알아 들으면 어쩌나.....
그래도 단어를 몰라도
들리는대로라도 받아적으면ㅋㅋ
사장님이 회사 이름은 알아 들으니까
다시 연락을 하곤 했었다.
이것도 몇번 하다보니 상대방의 말도 잘 들렸고 전화하는데 두렵지도 않더라.
택배전화나 상담사 전화같은 것도 어느순간 잘 받고 말하는 내 자신이 놀라웠다.
그렇게 나의 2년간의 일본생활은
처음 내가 목표했던 일본에서 1년간 살아보기.
일본사람들과 의사소통 표현 자유롭게하기.
모두 완벽까진 아니지만 성공을 했다.
큰 돈을 벌었던 기회는 아니였지만
나에게 큰 경험을 줬다.
일본사람들에 대해 기본적으로 있었던 이미지도 많이 바뀌게 되었고
겉모습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그 뜻을 직접적으로 체험하면서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는 시기였다.
그 나라를 알려면 그나라 사람들의 문화를 알아야 이해하기가 더 쉽다고 했다.
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나 말투가 왜그런지 확실히 깨달았다.
개인주의와 예의있는 나라.
친절한 나라.
이런 이미지의 이면의 모습들을 많이 알게된 것 같다.
일본은 야근이 없다.
야근수당은 칼같이 잘 준다.
이런 이야기들도 우리나라처럼 대기업에나 통하는 말이란것도 알게되었다 ㅋㅋ
알바들은 다 칼같이 주지만 직장인들에게도 다 통용되는 말은 아니였다.
다 회사마다 다르고 운영방식에 따라 다른 곳이였다.
한국과 다르다면 다르지만
비슷한 부분도 많은 나라였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하단걸 깨닳은 값진 2년이였다.
그렇다.
이 모든 경험과 나의 인생의 시작은
마츠우라아야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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